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晋州市 忠孝敎育院記
나라에서 學校를세워 敎育을하고 人材를 養成함은 將次 나라에 큰일을 圖謀함이며 百姓의 風俗을 敎化하고 倫理를 밝히고자 함이다. 우리고을 晉州는 首都인 開城에서, 漢陽에서 千里밖에 있는 고을이지만 일찍이 全國 8牧, 12牧에 드는 雄都였다. 晉州牧 官衙의 東便에는 鄕校가 있고 西便에는 社稷壇이 있어 선비들이 學問을 익히고 修養하는 글 읽는 소리와, 農夫들의 豊年歌가 끊이지 않았다. 일찍이 高麗成宗 六年(987)에 鄕學堂을 設置하여 人材를 養成하였으니 全國에서도 先驅的인 일이었다. 1011年에 四敎堂으로 改稱하여 文行忠信을 가르쳤고 學問만이 아닌 선비가 갖춰야 할 모든 德目을 기르고 實踐하는 全人的인 敎育機能을 修行하였다. 朝鮮 初期에 鄕校로 改稱하고 文廟를 設置하여 學問과 享祀를 竝行하여 人材의 要覽으로 發展을 거듭하였다.
이에 世人들이 이르기를 晉州는 선비兩班의 고장이라, 朝廷 人材의 半이 嶺南이요, 그 中 半이 晉州라 하였으니 이는 當然之事라하겠다.
나라가 不運하여 壬辰倭亂과 日帝强占期, 六.二五 等 酷毒한 試鍊이 닥쳤으나 꿋꿋한 護國情神으로 克復하였고 祖國光復을 맞고부터 西歐文物의 流入으로 敎育機能은 學校로 移關하고 鄕校에서는 享祀機能만 修行케 되었다.
風俗이 바뀌어 大家族制度에서 核家族化되고 學校敎育이 入試爲主에 치우치다보니 우리의 傳統人性敎育이 缺如되고 倫理道德이 失墜되는 危機를 맞게 되었다. 이에 晋州市에서 지난 2005年 儒林會館을 建立하고 忠孝敎育院을 開院하여 우리의 傳統人性敎育과 올곧은 선비를 길러내는데 精誠을 쏟아 年間 二萬五千名의 學生과 선비들의 朗朗한 글 읽는 소리가 復活케되었다. 그러나 旣存儒林會館으로는 殺到하는 受講申請者를 勘當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平素 靑少年 人性敎育의 重要性과 人材養成에 큰 觀心을 갖고 있던 曺奎逸 市長이 敎育의 百年大計를 爲해 總四五三坪의 垈地위에 延建坪260坪에 三層으로 總三拾五億원을 投入하여 忠孝敎育院을 建立하고 運營豫算을 增額하니, 옛날 人材를 養成하여 나라의 棟樑을기르던 情神에 매우 附合하는일이다.
敎育院이 完工되자 李芳男 典校와 鄭基敏 事務局長이 그 事實을 筆者에게 記錄하도록 請하니, 不文으로 堪當할 수 없는 일이나 直前 典校로써 敎育院 建立推進事實을 누구보다 昭詳히 알고 있기에 敢히 辭讓치못했다. 무릇 이 敎育院이 千年을 이어온 晉州敎育의 要覽으로서 靑少年에게는 傳統人性敎育을, 선비들에게는 孔孟의 學文과 올곧은 선비情神을 培養하여 倫理道德性 回復과 禮儀廉恥가 되살아나 健全한 社會를 이룩하는데 크게 寄與할 것임을 믿어 疑心치 않는다. 이 敎育院 建立에 함께 推進한이는 朴鍾植 儒道會長과 成碩基 事務局長이다.
檀紀 四千三百五十四年 一月十一日
晉州鄕校 原任典校 靑松 沈東燮 撰
晉州鄕校 典 校 全州 李芳男 書
진주시 충효교육원기
나라에서 학교를 세워 교육을 하고 인재를 양성함은 장차 나라에 큰일을 도모함이며 백성의 풍속을 교화하고 윤리를 밝히고자 함이다. 우리고을 진주는 수도인 개성에서, 한양에서 천리밖에 있는 고을이지만 일찍이 전국 8목, 12목에 드는 웅도였다. 진주목 관아의 동편에는 향교가 있고 서편에는 사직단이 있어 선비들이 학문을 익히고 수양하는 글 읽는 소리와, 농부들의 풍년가가 끊이지 않았다. 일찍이 고려성종 6년(987)에 향학당을 설치하여 인재를 양성하였으니 전국에서도 선구적인 일이었다. 1011年에 사교당으로 개칭하여 문행충신을 가르쳤고 학문만이 아닌 선비가 갖춰야 할 모든 덕목을 기르고 실천하는 전인적인 교육기능을 수행하였다. 조선 초기에 향교로 개칭하고 문묘를 설치하여 학문과 향사를 병행하여 인재의 요람으로 발전을 거듭하였다.
이에 세인들이 이르기를 진주는 선비양반의 고장이라, 조정 인재의 반이 영남이요, 그 중 반이 진주라 하였으니 이는 당연지사라 하겠다.
나라가 불운하여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6.25 등 혹독한 시련이 닥쳤으나 꿋꿋한 호국정신으로 극복하였고 조국광복을 맞고 부터 서구문물의 유입으로 교육기능은 학교로 이관하고 향교에서는 향사기능만 수행케 되었다.
풍속이 바뀌어 대가족제도에서 핵가족화 되고 학교교육이 입시위주에 치우치다보니 우리의 전통인성교육이 결여되고 윤리도덕이 실추되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에 진주시에서 지난 2005년 유림회관을 건립하고 충효교육원을 개원하여 우리의 전통인성교육과 올곧은 선비를 길러내는데 정성을 쏟아 연간 25,000명의 학생과 선비들의 낭랑한 글 읽는 소리가 부활케 되었다. 그러나 기존유림회관으로는 쇄도하는 수강신청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평소 청소년 인성교육의 중요성과 인재양성에 큰 관심을 갖고 있던 조규일 시장이 교육의 백년대계를 위해 총453평의 대지위에 연건평260평에 3층으로 총35억 원을 투입하여 충효교육원을 건립하고 운영예산을 증액하니, 옛날 인재를 양성하여 나라의 동량을 기르던 정신에 매우 부합하는 일이다.
교육원이 완공되자 이방남 전교와 정기민 사무국장이 그 사실을 필자에게 기록하도록 청하니, 불문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나 직전 전교로써 교육원 건립추진사실을 누구보다 소상히 알고 있기에 감히 사양치 못했다. 무릇 이 교육원이 천년을 이어온 진주교육의 요람으로서 청소년에게는 전통인성교육을, 선비들에게는 공맹의 학문과 올곧은 선비정신을 배양하여 윤리도덕성 회복과 예의염치가 되살아나 건전한 사회를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교육원 건립에 함께 추진한 이는 박종식 유도회장과 성석기 사무국장이다.
단기 4354년 1月 11日
진주향교 원임전교 청송 심동섭 짓고
진주향교 전 교 전주 이방남 쓰다